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자 :허영선
  • 출판사 :마음의숲
  • 출판년 :2019-08-12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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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부터 소년, 청년, 여성은 물론 노인들까지 제주 도민들이 무차별하게 희생된 참혹한 사건, 제주4·3.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4·3의 슬프고 처연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 제목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은 설워(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은 서러워할 봄조차 맞을 수 없었다는 망자의 비통한 시선이 스며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저자 허영선 역시 이 책을 통해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민 3만여 명이 희생되었던, 이 대비극”을 항시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제주4·3사건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비(白碑)에 새겨넣어야 할 4·3의 이름들과 정명의 문제, 진실규명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4·3 71주년을 바라보는 지금, 이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들과 4·3이 남긴 상흔, 4·3과 여성들, 4·3 한복판에서 목숨 걸고 검은 바다를 건넌 재일동포와 그들이 꽃피운 예술, 황홀과 비애를 동시에 간직한 제주의 역사와 자연 등 4·3으로부터 시작된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



▶ 4·3, 제주의 얼굴을 할퀴고 흘러간 ‘애린’ 역사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 자리 잡은 독특한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곳,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그 황홀한 풍경에 이끌려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곳, 약 2010년부터 제주도로 떠나는 이민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해온 곳.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1만 8천여 신들의 섬 제주는 누군가의 또다른 꿈이자 희망의 섬이다. 그러나 황홀한 제주의 절경 뒤편에는 아직 해원하지 못한 수많은 목숨의 원통함이, 4·3이라는 아픈 이름이 스며 있다.

1947년 3월 1일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참극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졌으며, 무력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약 2만 5천 명~3만 명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숫자의 희생자를 남겼다. 7년 7개월 동안 섬의 공동체는 절멸했다. 희생된 이들은 대부분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 생존자들은 감히 눈물도 내지 못했다. 아프다고는 더더욱 말하지 못했다. 이들은 말한다. “두루 설뤄사 눈물 난다(덜 서러워야 눈물 난다)”고. 덜 서러워야 눈물도 나는 법.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가슴 깊이 삭인 나날이었다.

제주 출신 언론인이자 작가, 제주4·3연구소 소장 허영선은 때로는 날카로운 칼럼으로, 압축된 시로, 그 깊은 상흔을 낱낱이 풀어놓은 산문으로 제주와 4·3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저자는 제주의 얼굴을 할퀴고 흘러간 그 모든 ‘애린’ 역사의 고통과 절망을 고스란히 품고, 그것을 다시 생생하고 치열한 기록으로 풀어냈다.



▶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슬픔의 장면들

그해 여름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이 남편을 동네 청년들과 함께 트럭에 태우고 있었습니다. (……) 두려움에 떠는 남편의 눈빛이 느껴졌어요. 남편이 너무나 가여웠어요. (……)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 빵을 사러 뛰어갔어요. 저 트럭이 출발하기 전 달려가야 할 텐데. 난 빵 한 봉지를 사들고 허둥지둥 달려갔어요. 차 위로, 온 힘을 다해 그 빵을 탁 올렸어요. 순식간에 트럭은 “빵” 소리를 내며 떠나버렸어요. (……) 누군가가 말했어요. “꼭 다시 돌아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 제주4?3사건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떼어놓았습니다. 남편에게 그때 그 빵의 온기가 조금이라도 전해졌을까요.

-〈난 찐빵을 안 먹습니다〉 본문 중에서



“이게 어디 잊어불 일이야.” 4·3 생존자들은 당시의 기억에서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책 곳곳에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된 ‘그날’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7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어제 일 같이 생생하기만 한,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슬픔이다.



▶ 4·3으로부터 시작된 그 모든 이야기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에는 4·3 71주년을 바라보는 지금 이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들, 4·3이 남긴 상흔, 4·3과 여성들, 4·3 한복판에서 목숨 걸고 검은 바다를 건넌 재일동포와 그들이 꽃피운 예술과 사상, 황홀과 비애를 동시에 간직한 제주의 역사와 자연 등 4·3으로부터 시작된 그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1장 〈서러움에 사무치는 봄길을 걸어봅니다〉에서는 제주라는 공간과 그곳에 얽힌 제주4·3의 아픈 역사가 조심스레 펼쳐진다. 그날의 기억을 가슴 한구석에만 몰래 묻어두고 살아온 이들이 마침내 입을 열어 들려주는 생생한 증언,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 후유장애 판정을 받지 못해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 4·3 희생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월호참사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비추어 바라본 4·3 트라우마 등을 통해 저자는 제주4·3은 결코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의 사건이 아님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한다.



2장 〈살다보니 살아지더군요〉에서는 제주4·3의 광풍을 온몸으로 겪어낸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으로 여성성을 훼손당하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며느리’라는 이유로 진료비나 유족 지원금 등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 하루아침에 소중한 존재를 잃었지만 남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바다로 나간 제주해녀들의 삶, 4·3 생지옥의 제주 바다를 건너 오사카로 떠난 재일 해녀들 등 제주4·3사건을 몸소 겪은 여성들의 참혹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3장 〈전쟁이 남긴 노래〉는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갔던 베트남전쟁, 인도네시아대학살, 오키나와전, 위안부 문제 등 제주4·3사건과 닮아 있는 참극들을 살펴본다. 죄 없는 이들이 국가의 폭력에 희생되었다는 점, 그리고 현재까지 속 시원한 원인 규명이나 가해자의 명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제주4·3사건과 맥을 같이한다. 저자는 서로 닮아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고찰하며 진실과 정의,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4장 〈슬픈 그들이 보고 있습니다〉는 4·3을 피해 바다를 건너 낯선 땅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꽃피운 예술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대표적인 재일 작가 김시종 시인과 김석범 작가, 재일 민족교육계의 정신적 거목 김용해 선생, 한국과 재일 사학계에 한 획을 그은 재일 사학자 고 강재언 선생,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선구자 신촌 조규훈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을 소개하고, 고국땅을 자유로이 오갈 수 없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애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인 5장 〈당신에게 위로할 봄이라도 드리고 싶지만〉에서는 제주라는 유산이 지닌 가치들을 다시 한번 짚어본다. 그럼에도 끝내 지켜지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많은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제주의 그 모든 가치를 보존하고 지켜내려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의 삶이, 오랜 세월 지켜온 터전과 역사가 전혀 존중받지 못한 채 어떠한 명분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작금의 행태는 오늘날 우리가 제주라는 공간을 대하는 방식과 4·3의 비극이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 전에 그곳에 무엇이 있고, 이를 어떻게 보듬고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먼저임을 저자는 일관되게 강조한다. ‘제주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뒤에는 언제나 ‘제주4·3’이 있다는 사실도.



▶ 일흔한 번째 봄,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제주를 다녀와서 유명 잡지 《CEO》에 아래와 같은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해 트럭에서 해변에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잔인한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 위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일출봉으로 올라가는 우뭇개동산에서 30여 명이 총살을 당했고 그 앞 성산포구 터진목 앞바다에서는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총알이 아깝다고 대창이나 죽창으로도 만행을 저지른 저 성산포구 앞바다에는 오늘도 죄 없이 죽어간 한 많은 원혼들의 거친 삶이 넘실거린다.

제주4·3은 이제 71주년을 맞았다. 힘겹게 삶을 이어왔던 생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남은 생존자와 유족 들은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대가,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시선은 현재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의 아픔들로 빚은 거울은 현재를 비추고, 이는 다시 미래를 향한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에 깃든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이야기 한 꼭지는 쉽사리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뼈아픈 역사 낱낱을 기억하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은 “죄 없는 게 죄였던” 참혹한 시대를 살아냈던 이들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애도의 방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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