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과 체찰

함양과 체찰

  • 자 :신창호
  • 출판사 :미다스북스
  • 출판년 :2010-03-19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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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 유교사회의 빛나는 대표적 지성, 세계에 우뚝 서다!!

한국을 넘어, 동양을 넘어, 세계에 우뚝 선 학자, 퇴계 이황에게 현대를 관통하는 공부법을 배운다!! 유교의 핵심 덕목인 함양과 체찰의 번득이는 가르침!!

500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발휘되는 위대한 마음공부법!!





1. 21세기 들머리의 한복판, 왜 갑자기 퇴계 이황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배워온 퇴계 이황의 모습은 ‘심오한 유교 사상가’이거나 ‘이기론理氣論의 철학자’ 또는 ‘보수적이고 약간 관념적인 조선시대의 사상가’이다. 하지만 그 이해의 수준은 굉장히 낮고 게다가 피상적이기까지 하다. 퇴계에 대한 이미지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퇴계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거의 전적으로 무지에 가깝다. 그의 사상과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천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면서도 인간적인 사상가이자 조선 5백년 유교사회의 가장 빛나는 지성인 퇴계 이황이 21세기 현대 한국사회에 와서 천 원짜리 지폐 속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첫째, 20세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국교육의 문제다. 현재 한국의 초중고대학 교육은 기본적으로 서구식 교육관에 입각해 있다. 퇴계 이황이 그토록 강조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마음공부의 핵심이 인성교육인데, 학교의 공교육에서 쓰이는 인성교육은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의 다국적 교육철학과 방법론이 종합된 것이다. 설사 그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동안 5천년 한국 역사, 가까이는 5백년 조선사회의 교육적 토대를 기초로 하여 마련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사회 최대의 교육철학자이자 인성교육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다음 두 번째로는 퇴계 이황의 사상에 대한 현대적 계승의 단절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교육학계 일각에서 퇴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근자에는 일본이나 중국, 미국과 같은 곳에서 퇴계 이황의 사상에 대한 재조명과 세계적 사상으로서의 학문적 정립을 시도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조명이 덜 되고 있고 오히려 다른 철학자나 사상가들에 비해 외면당하고 있다는데 또 다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물론 퇴계의 학문이나 사상이 일반인에게 제대로 소개가 안 된 것에는 그의 저작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요인에도 불구하고 퇴계 이황의 학문적 성과를 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리고 세계 지성사회가 학문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널리 재조명해야할 강력한 사명은 존재한다.





2. 그렇다면, 퇴계 이황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는가?

- 조선 유교사회의 대표적 지성 퇴계 이황의 역사적 의미



1) 학문에 온몸을 바친 지성인, 청렴강직한 관리이자 선비!

‘강직한 암행어사로 활약하고, 군수 퇴직 후에 남은 건 두 개의 책상자뿐이었던 청백리!’




경상북도 안동의 시골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황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자라면서도 꼬마시절에는 이웃집 노인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열두 살 부터는 삼촌인 송재공에게 '논어'를 배웠으며, 스무 살 무렵까지는 어지간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20세 무렵 이황은 '주역'의 뜻을 강구하느라 식음을 전폐하고 몰두하다가 평생의 지병을 얻어 이때부터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벼슬에는 욕심이 없고, 오직 공부에 뜻과 마음을 두었지만, 가족을 돌보기 위해 4수(?) 끝에 34세에 대과에 급제한다. 그후 본격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거쳐 승진을 거듭한다. 그리고 40세에는 감찰기관인 사헌부의 ‘지평’이 된다. 이후에도 계속 사헌부와 홍문관, 성균관 등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나 이황은 언제나 청렴하고 강직하고 높고 깨끗하여 사욕과 탐욕이 일체 없었다.

이황은 박문수 이전에 벌써 강직한 암행어사로도 활약한 적이 있다. 42세 되던 해에 이황은 어사가 되어 충천도 지역의 군이나 읍을 돌면서 흉년구제 작업을 암행감찰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 “흉년구제를 대비하여 경비를 비축”할 것과 “못되고 탐욕스런 공주판관 인귀손의 죄를 다스릴” 것을 당시의 왕인 인종에게 요청하여 실행하도록 만든다. 또한 그가 40대 후반 풍기군수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가져간 물건이라고는 달랑 책을 담은 상자 두어 개가 전부였다. 오늘날까지도 만고에 귀감이 되는 청렴강직하고 깨끗한 관리의 표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황은 43세 이후로는 나라와 왕으로부터 관직에 임명되면 그만두기를 계속하며, 임명받고 거절하기를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영예로운 벼슬자리보다 매화를 더 사랑하며 학문을 탐구하고 지성을 교유하기를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하여 관직을 맡으라는 명종의 거듭되는 요청에 대하여 퇴계가 제시한 ‘관직을 수행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①어리석음을 숨기면서 벼슬자리를 도둑질하는 것 ②병으로 몸을 못 쓰게 된 자가 녹봉을 도둑질하는 것 ③헛된 명성으로 세상을 속이는 것 ④잘못인 줄 알면서도 무릅쓰고 벼슬에 나아가는 것 ⑤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것)는 오늘날 21세기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모든 공직사회를 비롯한 주요한 기관의 수장과 리더들이 깊이 새겨야할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2) 효와 충(인과 예)을 실천하고, 조선사회 인성교육의 틀을 만들다!

‘어머님 3년상의 예를 다하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제자를 맞이하여 인사를 하다!’




이황은 두 살에 아버지를 여윈 후 홀어머니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기 쉽다. 과부가 어떻게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남보다 백 배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는 가르침 속에서 공부를 하며 자랐기에 남보다 더욱더 부모에 대한 효와 나라에 대한 충, 인륜과 근본적인 도덕에 충실했다. 그래서 관직에 나간 지 4년째, 37세 되던 해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고향으로 돌아가 꼬박 3년상을 치렀다.

이러한 인본정신은 가정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40대 후반 나라의 명을 받아 풍기군수로 임명되었을 때 이황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에 해당하는 소수서원을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서원은 조선사회 이후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립대학교육의 근원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황은 소수서원을 비롯하여 후에 도산서원을 남김으로써 조선사회 올바른 사립교육 부흥의 혁혁한 공적을 세운 것이다. 또한 학자로서의 권위나 자존심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기대승, 정자중, 권호문, 이이 등과의 서간 및 내왕을 통해 빛나는 사상적 교유의 모범을 남기었다. 이것은 학문적 교유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하나의 전범이라고 할 만한다. 아울러 이황은 죽는 순간까지도 병마와 싸우며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어찌 제자들을 안보겠는가!”라며 학자로서의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3) 조선의 사상가이자 세계에 우뚝 선 철학자!

“유교의 최고봉!” “학문과 도덕 모두 조선의 최고!” “세상에 보기 드문 기품 있는 학자!”




퇴계 이황은 생전에도 제자가 많았지만 타계 이후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퇴계의 후세대인 이익, 정약용, 정시한 등의 인물들이 사숙私淑의 형태로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퇴계의 사숙학파라 일컬어질 정도로 하나의 뚜렷한 학문적 흐름을 형성했다. 한편 퇴계의 학문은 중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일본 근세유학의 시조격인 후지와라 세이카는 자신의 학문형성이 퇴계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을 깨우쳐준 최고의 저서로 퇴계가 발문을 써서 편찬한 '연평문답'을 든다. 그 후로 후지와라의 제자이자 일본주자학의 도입자로 알려진 하야시 라잔, 일본 유학의 대가로 인정받는 야마자끼 안사이 등이 있어 역시 퇴계를 조선 유교의 일인자로 칭송하고 그의 제자들은 퇴계를 일컬어 “주자 이후의 첫 번째 가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일본 실학파의 시조인 오쓰카 다이야는 퇴계를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호를 ‘퇴야退野’라고 지었으며 그의 제자인 미야케이가 퇴계를 칭송하여 지은 시가 남아있기도 하다. 중국의 경우에는 퇴계 생존 시에 전파된 '성학십도'를 통해 이름이 알려졌고 사후에는 명성이 더욱 널리 퍼져 청나라 말기의 대학자인 양계초나 신해혁명 때 혁명군 수령이었던 려원홍 등과 같은 사람들이 퇴계를 일컬어 노래하고 찬양시를 썼다. 20세기 들어서면서 퇴계의 학문은 점차 국제성을 띠게 된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각지의 저명한 동양학자들이 ‘퇴계학 국제학술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특히 퇴계 사후 4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가 1970년 개최된 이래, 퇴계학 연구기관 역시 급속히 증가하여 미국, 일본, 대만, 홍콩, 독일 등 세계 각지에 퇴계학부 지부가 설립되어 바야흐로 퇴계는 국제적 사상가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3. 왜, “함양과 체찰”인가? - 현대 한국인들이 읽어야할 고전 중의 고전



‘함양’과 ‘체찰’은 퇴계 이황이 죽을 때까지 강조했던 유교적 지식인, 아니 공부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주요하고 핵심적인 덕목이다. 퇴계 이황 스스로가 서간집 안에서 추려 묶었던 '자성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내용도 바로 이 ‘함양’과 ‘체찰’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병통이 되는 것은 뜻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정자중에게 답함’에서

“공부란 한번 껑충 뛰어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정자중에 답함’에서

“책을 읽되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 하지 마세요.”-‘남시보에게 답함’에서



퇴계 자신은 경험을 통해 공부하는 사람의 병통, 즉 고질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알묘조장(벼싹을 잡아당겨 벼가 빨리 자라는 것을 돕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를 설명한다. 벼싹을 잡아당긴다고 벼가 빨리 자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공부도 ‘벼락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내고자 한다. 퇴계는 이런 자세를 조급증이라 표현하며 공부하는 사람의 경계대상 1호로 꼽았다. 이밖에 공부에 관한 그의 깨달음이 계속 이어진다. ‘함양과 체찰’의 방법론이 고스란히 담긴 '자성록'은 퇴계 이황이 기대승, 정자중 등과 같은 후배 유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추려 엮은 서간집이다. 때문에 이 편지에는 일상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일상적인 내용의 문맥 속에는 당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정수와 정치적 식견과 인간적 성찰의 근본적 도리에 대한 퇴계 이황의 핵심적 철학과 사상이 구체적으로 숨 쉬고 있다.

이 책 '함양과 체찰-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뒤에 '자성록'을 뼈대로 퇴계의 가르침을 재구성하였다. 아울러 ‘활인심방’과 ‘수신십훈’ 등 퇴계 이황의 행동적 가르침을 첨가하였다. ‘함양과 체찰’은 박제화된 퇴계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난해하게 인식되는 그의 이론을 현대인이 소화하기 쉽게 만든 책이다. '함양과 체찰'을 통해 현대의 한국인들은 퇴계의 지혜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고, 제1부 ‘함양과 체찰의 삶, 이황’에서는 ‘공부하는 인간, 퇴계’라는 측면에서 퇴계의 생애와 철학을 명료하게 재구성하고 있어서 학자로써의 퇴계뿐만 아니라 인간 퇴계의 일면도 재미있게 엿볼 수 있다.





4. 일상 언어로 구성된 퇴계사상의 정수, 자성록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한편, 퇴계 이황의 철학과 사상을 응축한 한자를 꼽으라면 ‘경敬’이다. 퇴계는 ‘경’을 공부의 영역으로도 확장해서 설명한다. 공부법 가운데 으뜸이 ‘경’이라는 것. 퇴계에 따르면 ‘경’은 “한 곳에 몰입하여 다른 쪽으로 마음을 쓰지 않는 공부법”이다. 경각심과 유사하다고도 한다. ‘몰입’, 또 다른 표현으로 ‘마음의 집중’은 퇴계가 간파한 공부의 핵심이다. 마음을 집중해야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제대로 된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이 퇴계의 주장이다. 언뜻 들어도 당연한 말이다. 학식이 없는 필부라도 알 법한 진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퇴계는 그 사상을 벼리고 벼려 이 같은 진리에 도달했다. 몰입의 경지 ‘경’은 그래서 심오한 퇴계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당연해 보이면서도 심오한 진리. 우리는 흔히 이를 보편적 진리라 부르는데 ‘경’은 공부법에 관한한 보편적 진리라 할 수 있다.



“마음에 있는 것과 사물에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아님을 분명하고 투철하게 알아야 합니다”-편지4 ‘정자중에게 답함(2)’에서

“공부는 몸에 배도록 익히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익히는 일은 어떤 것이건 하나에 몰입하는, 이른바 정신집중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편지6 ‘정자중에게 답함(4)’에서



예나 지금이나 마음공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말일 것이다. 일찍이 퇴계는 마음공부법의 중요성을 파악했고 이를 후학들에게 깨우쳐 주고자 '자성록'을 엮은 것이다. 마음공부법은 퇴계의 철학으로도 읽힌다. '자성록' 곳곳에 등장하는 ‘이치를 깨우치는 법’은 마음공부를 빼곤 설명되지 않는다.

퇴계의 마음공부는 현대인에게 절실한 덕목이다. 입시 위주 교육풍토, 1등 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가 뼈아프게 자성해야할 덕목이다. ‘함양과 체찰’은 마음공부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인에게 참된 공부가 무엇인지 일깨우는 죽비 같은 책이다.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두고두고 펼쳐보고 곱씹어 볼만한 책이다.





5. 이 책 '함양과 체찰-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의 구성과 특징



우선 제1부는 조선의 지성인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제2부는 퇴계 사상의 학문적 높이에 대하여 마음공부법이라는 큰 테마 아래 '자성록'을 재구성했다. 각 편지는 원래 순서(편지의 넘버링)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별로 모았다. 독자가 수월하게 읽도록 배려하면서 편집했다. '자성록'을 단순 번역 수준이 아니라 마음공부법이라는 접근법으로 새롭게 배열한 책은 '함양과 체찰'이 처음이다.

퇴계가 지은 시편도 넣었다. 공부와 학문을 읊은 시들을 위주로 선별했다. 각 시는 '자성록' 내용과 의미론적으로 조응하도록 배치했다. 이 책은 마음공부에 대한 퇴계의 육성이 생생하게 담긴 '자성록'을 중심으로 하여 선생의 전 생애와 핵심적인 사상쳀 담긴 ‘활인심방活人心方’과 ‘수신십훈修身十訓’을 함께 묶었다. ‘활인심방’은 공부법의 실천요령인 셈이다. 즉 공부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일관되게 퇴계의 사상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자성록'은 퇴계선생이 후학들과 교류한 편지를 필사하여 직접 선별하여 묶은 일종의 서간집이다. 그동안 몇 차례 의역 출간된 적은 있었으나 지금껏 그 진가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채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이 책에서는 그래서 편지글이라 하지만 독해가 만만찮은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는 '자성록'을 꼼꼼하면서도 편안한 문체로 정리했다. 따라서 '함양과 체찰'을 통해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퇴계선생의 원고를 청소년부터 일반인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성록'에서 퇴계는 생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부의 조급함을 나무라면서 집중과 평생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처세와 공부의 관계에 대한 지적 또한 무척 흥미롭다. '자성록'을 읽어가노라면 따뜻한 사랑방에 앉아 나직하고 정겨운 어투로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큰 선생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자성록' 앞에 실린 퇴계의 생애와 학문의 편력 또한 흥미롭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퇴계는 이웃집 노인에게서 천자문을 배우면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 벼슬을 하게 된다. 충청도 지방의 어사로 파견되어 민심을 살피고 왕에게 보고한 일도 있었다. 애초부터 벼슬에 뜻이 없었던 퇴계가 최고관직까지 올라 그 명성이 나라에 퍼져 학문과 벼슬 사이에서 기나긴 신경전을 벌이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제3부에 실린 ‘활인심방活人心方’은 만병의 근원이 마음에 있음을 꿰뚫어 본 퇴계가 병의 증상이 아닌 원인을 치료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글이다. 그리고 ‘수신십훈修身十訓’는 마음공부를 실행하는데 따라야 할 10가지 준칙이다. 주자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사상적 진수가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각 장마다 붙어있는 주해註解는 성리학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단면과 추상적이고 어렵기만 한 성리학적 개념들에 대한 자세하고 치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꼼꼼하고 풍부한 주해를 읽다 보면, 조선의 직계 자손인 현대 한국인의 잠재의식을 배하고 있는 유교- 성리학의 기본 개념들, 리理와 치治, 궁리窮理와 거경居敬,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각 장마다 퇴계가 지은 시, 관련 그림 등을 곁들여 인문학적 지식과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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