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미로

번역의 미로

  • 자 :김욱동
  • 출판사 :글항아리
  • 출판년 :2012-05-03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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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한 오랜 이론·실천적 고민 바탕으로 풀리지 않는 번역의 12가지 이슈 분석

서양이론의 한계 넘어, 한국 언어문화에 맞는 번역이론을 실제 사례와 함께 탐색




영문학자 김욱동 한국외대 통번역학과 교수가 번역에 관한 새로운 이론서를 펴냈다. 그는 『번역과 한국의 근대』 『근대의 세 번역가』 등 번역에 대한 역사적 접근과, 『번역인가 반역인가』와 같은 현장비평 및 번역가이드북 등을 펴냄으로써 한국에서 번역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해온 학자다. 현장 번역가이기도 한 저자는 이번에 펴낸 『번역의 미로』에서 번역가들이 반드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번역의 철학적, 기술적 문제들을 12개의 테마로 정리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한국적 번역 이론의 모색’이라는 큰 탐색의 첫발을 내디뎠다.

좋은 번역, 정확한 번역은 인류가 오랜 시간 고민하며 추구해온 것이지만, 그에 대한 본격적인 학문적, 이론적 탐색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번역학은 분과학문 가운데 가장 늦게 성립된 학문 중의 하나이며, 국내에 소개되는 번역학과 번역 이론은 대부분 서양에서 건너온 것들이었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서양 번역 이론을 국내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면 당연히 언어의 구조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것을 한국 상황에 맞게 변형시키거나, 혹은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의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사유해 이론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책 『번역의 미로』는 그에 대한 답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디디고 선 논의의 장은 번역에서 매우 해묵은 논의거리임과 동시에 매우 논쟁적인 주제들이다. 가령 ‘이국화인가 자국화인가’ ‘예술인가 기술인가’ ‘형식적 등가와 역동적 등가’ 등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며 좁혀지지 않는 인식론적 간극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주제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극단적 견해들을 조율하고 균형점을 찾는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바벨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번역에 관한 다양한 상징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번역에 대한 논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번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번역의 내연과 외포’ ‘번역의 세 가지 우상’ ‘번역 방법의 스펙트럼’ 등을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빈치 코드』 『해리포터』 시리즈 등 많은 사람이 읽은 대형 베스트셀러 문학에서 어떻게 잘못된 번역이 발생하는지 등 오역 발생의 구조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실무자들을 위한 이론적 교재이자, 동시에 일반인들 또한 번역에 관한 주요 인문학적 토픽을 역사적, 체계적으로 섭렵할 수 있게 했다.





각 장의 주요 내용



제1장 ‘바벨탑의 붕괴와 번역의 탄생’에서는 “단일한 언어와 단일한 문화를 부르짖는 인간과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를 주장하는 신 사이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바벨탑 이야기에서 시작해, 조지 스타이너, 자크 데리다, 윌리스 반스톤 등의 번역 이론을 연속적으로 소개했다. 가령 반스톤은 번역 행위를 “야훼가 파괴한 바벨탑을 다시 쌓는 도전적 행위”로 파악했다. 더 나아가 저명한 유대교 신학자요 철학자인 프란츠 로젠츠바이크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모든 번역은 메시아적 행위로 구원을 좀더 가깝게 앞당기는 행위”라고 보았다. 이처럼 지금의 번역 개념이 만들어지기까지 번역을 둘러싼 수많은 상상과 정의를 한 줄로 꿰어 설명한다. 또한 동서양의 번역 개념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도 살폈다. 서양에서 번역은 ‘강 건너편에 닿는다’ ‘강 건너로 실어 나른다’는 어원을 갖지만 동양에서 飜譯의 번은 ‘뒤집는다’의 뜻이 강하다.

제2장 ‘번역의 외연과 내포’에서는 역사적 퍼스펙티브가 긴 만큼이나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적 스펙트럼도 무척 넓은 번역의 여러 양상을 종합적으로 설명했다. 저자는 언어 간 번역을 넘어서서 다양한 형태의 번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사투리와 표준어 간 번역을 예로 들 수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첫 구절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를 제주 방언으로 번역하면 “나 바레기가 권닥사니 벗어정 / 가고정 홀 때랑 / 속솜호영 오고셍이 보내 주쿠다”가 된다. 그리고 황지우의 시 「게눈 속의 연꽃」처럼 언어 대 언어, 기호 대 기호가 아니라 사물 대 언어와 같은 비대칭적 번역의 사례를 통해서도 번역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환기시킨다.

제3장 ‘번역의 세 가지 우상’에서는 세 가지 우상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번역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우상이란 1) 모국어에 대한 편견 2) 번역을 암호 해독 행위로 간주하는 태도 3) 완벽한 번역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다. 물론 원천언어에 대한 파악 능력도 중요하지만 모국어에 대한 앎도 그에 못지않다.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존 드라이든은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번역가 중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모국어(영어)에 대해서는 무식한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인도유럽어를 비롯한 서양어는 목적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한국어와는 조금 다르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가운데 “Why I Write?”라는 유명한 글이 있다. 그런데 한국 번역가들은 이 글을 번역하면서 하나같이 “왜 나는 쓰는가?”로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 동사 ‘write’는 목적어를 생략하고 자동사로 ‘(책 ·시·기사를) 쓰다, 집필하다, 저술하다’의 뜻으로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어 동사 ‘쓰다’는 반드시 목적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다’ ‘책을 쓰다’ ‘기사를 쓰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웰의 그 에세이도 그냥 “나는 왜 쓰는가?”가 아닌 목적어를 넣어 “나는 왜 글을 쓰는가?”로 번역해야 한다.

제4장 ‘번역은 예술인가 기술인가’에서는 번역을 음악에 비유해서 이 문제를 명쾌히 해명한다. 쇼펜하우어는 번역가를 음악가에 빗댄 적이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기교를 끊임없이 갈고닦는다는 점에서 번역가는 창조적 측면보다는 기술적인 측면이 강하다. 20세기 ‘첼로의 성자’로 일컫는 파블로 카살스는 아흔다섯 살까지도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여섯 시간씩 꾸준하게 첼로 연습을 했다. 한 기자가 까닭을 묻자 카살스는 “지금도 연습할 때마다 내 연주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끼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편 연주가가 작곡가의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연주하듯이 번역가는 외국어로 쓴 텍스트를 번역하면서 그 나름대로 예술적 기질이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똑같은 작품이라도 연주가에 따라 음악이 적잖이 달라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만 하더라도 하이페츠의 연주가 다르고, 오이스트라흐의 연주가 다르며, 정경화의 연주가 다르다. 번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기술이면서도 동시에 예술인 것이다.

제5장 ‘번역 용어의 문제점’에서는 번역 대상의 언어와 번역할 언어의 관계를 ‘원천어와 목표어’로 통일할 것을 제안한다. 출발어와 도착어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주인어와 손님어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자는 특히 후자를 문제 삼는다. 중국계 미국인 학자 리디아 류의 ‘host language / guest language’가 그것이다. 저자는 자칫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문화제국주의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는 지금, ‘주인어’와 ‘손님어’는 번역 행위를 자칫 식민지 종주국과 피식민 국가의 주종 관계로 떨어뜨릴 위험성이 무척 크다고 지적한다. 한편, 중역重譯을 무조건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중역이 가져오는 문제점은 크다고 소설 『모비딕』의 한 구절을 예로 설명하기도 했다.

제6장 ‘문화적 선회와 번역’에서는 문화적 선회를 다룬다. 이는 그동안 언어 중심의 번역에서 문화 중심의 번역으로 옮겨온 연구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형식주의적 번역 태도를 지양하고 문화적 맥락과 역사와 인습 같은 좀 더 텍스트 외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는 경향을 두루 가리키는 용어다. 수전 배스넷과 앙드레 르페베르 같은 학자들은 문화사와 문화 연구에서 이룩한 업적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문화뿐만 아니라 권력과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텍스트 자체보다는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에 무게를 싣는다. 권력, 이데올로기, 제도, 조작 같은 요소를 번역에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번역의 문화적 선회에서는 예를 들어 번역이 문학 제도를 형성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번역가가 번역 과정과 번역한 작품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권력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번역 텍스트는 원천 텍스트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가? 이렇게 문화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를 강조하며,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의 생산보다는 텍스트의 수용, 원천 텍스트보다는 목표 텍스트를 강조하게 마련이라고 설명한 뒤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제7장 ‘축역 또는 언어적 서사書士’는 오래된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번역 이론에서 축역逐譯(낱말 대 낱말의 철저한 대응)과 의역意譯을 둘러싼 문제만큼 그렇게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문제도 별로 없다고 본다. 저자는 키케로가 데모스테네스의 작품을 옮기며 처음 언급한 축역과 의역의 역사에서부터, 성서가 가장 대표적인 축역의 사례라는 점,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말을 첨가해 신성모독 죄로 몰려 화형당한 에티엔 돌레 이야기 같은 역사적 사실도 소개된다. 작가 나보코프는 “아무리 투박스러운 축역이라도 가장 아름다운 패러프레이즈보다 천배는 더 쓸모가 있다”며 축역을 매우 선호했다. 그는 ?번역의 기술?이라는 글에서 그는 ‘언어적 이행이라는 이상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죄악을 언급한다. 이 가운데에서 첫 번째 죄악은 번역가가 무식하거나 지식이 짧아서 범하는 것이고, 두 번째 죄악은 원천 텍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을 일부러 생략할 때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용서받지 못한 죄’에 해당할 세 번째 죄악은 번역가가 목표 텍스트의 독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원천 텍스트를 일부러 아름답게 고쳐서 번역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유형의 범죄에 대하여 나보코프는 “옛날에 표절하는 사람을 차꼬에 채워 처벌하였듯이 그렇게 처벌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8장 ‘의역 또는 부정不貞한 미인’에서는 의역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차피 축역과 의역은 풀리지 않는 문제이니 양쪽의 의견을 공평하게 들어보자는 뉘앙스가 강하다. 저자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예를 든다. 그는 자신이 시도한 의역 방식과 관련하여 “나는 낱말을 독자에게 세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저울질해 보이려고 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에서도 의역을 선호하는 그의 태도를 쉽게 엿볼 수 있다. 이 구절은 방금 앞에서 인용한 키케로가 “낱말의 동일한 수가 아니라, 이른바 낱말의 동일한 무게”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 말과 아주 비슷하다. 낱말의 수를 하나하나 헤아리는 대신 저울에 낱말을 단다는 것은 번역에서 무엇보다도 의미의 등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등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곧 축역보다는 의역을 선호한다는 말이다.

그 외에 저자는 9장 번역 방법의 스펙트럼, 10장 이국화인가 자국화인가, 11장 형식적 등가와 역동적 등가, 12장 비네와 다르벨네의 번역 절차 등에서도 일관성 있게 해당 주제에 대한 담론의 역사, 구체적 실례 등을 통해 해박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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