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평전

노무현 평전

  • 자 :김삼웅
  • 출판사 :책보세
  • 출판년 :2012-05-14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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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세상

그 희망의 증거로 남고자 모든 것을 바친 격렬한 영혼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노무현은 ‘패배자’일까?” 이 평전은 이 두 가지 관점에 주안점을 두고 기술되었다. 최종 결론은 ‘역사’가 내리겠지만 먼저 ‘민심’이 말해준다는 데에 저자의 방점이 찍힌다.

‘잘나가는’ 변호사 노무현이 세속의 영달을 뒤로하고 ‘노동자의 벗’ ‘거리의 변호사’ ‘아스팔트 위의 전사’가 된 것은 암울한 시대의 부름이었고, 그를 정치로 이끈 것 또한 시대의 모순이었다. 정치판에 뛰어든 그는 청문회 스타로 떴지만 ‘3당 야합’을 거부함으로써 강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막혀 가시밭길을 걷게 되었다. 시민은 그런 그의 고행에서 정치의 희망을 보게 되었고 마침내 ‘노무현 구하기’에 나섰으니 ‘노사모’다. 정치의 변방이요 소수파인 그가 민의에 힘입어 마침내 민주진보의 독자 진영만으로 처음 대통령이 됨으로써 한국정치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래서 그의 책무는 더욱 막중했고,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자 신명을 다했다. 그러나 수구기득세력의 집요한 발목잡기와 악의적인 왜곡에다 그 자신의 몇 가지 실책이 겹쳐 그의 정권은 파란을 겪어야 했으며 그는 끝내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는 듯싶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우리 역사상 한번도 ‘시민’으로서 ‘민주적 리더십’을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의 오해였고, 진보의 성공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족벌언론의 프로파간다였다. 그가 퇴임하고 나서 “그 후임을 겪어보고, 수구언론에 의해 자행된 ‘실패의 덧칠’을 벗겨놓고 보니” 비로소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 노무현’은 “정치적 소수파로서 우리 사회의 뒤틀린 권력구조 안에서 정치보복성 ‘토끼몰이’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패배자였다”고 결론 내린다. 백범이나 여운형, 링컨이나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볼프 슈나이더가 바친 헌사대로 “승리자로 가득한 세상보다 나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 곧 ‘위대한 패배자들’이었다.

일찍이《적과 흑》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두고 ‘위인’을 말한 바가 있는데, 저자는 이 헌사를 ‘바보 노무현’에게 바치면서 “진정한 위인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고 고금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진정한 위인은 자유롭고 온화하고 친근하고 대중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만지거나 주무르도록 자신을 내버려둔다.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들여다봐도 잃을 것 하나 없다. 또는 그를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감동하게 된다. 그는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에게도 공손히 몸을 숙이며 힘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본성으로 쉽게 되돌아온다. 이따금씩 그는 자신을 포기하고 등한시하며 자신의 장점을 간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항상 제자리를 찾아 장점들의 가치를 드러나게 할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사는 세상’ 꿈을 남긴 채 떠난 우리 시대의 ‘위인’에 대한 이 ‘평전’으로 그를 기리고 반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노무현盧武鉉(1946~2009)



김해 진영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금이 없어 외상 입학한” 진영중학교 1학년 때는 이승만 생일 기념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백지동맹’을 선동하는 결기를 보였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막노동판을 떠돌면서 사법고시의 꿈을 키우던 중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1973년 결혼하고 1975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77년 대전지법 판사로 부임했으나 이듬해에 법복을 벗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으며 잘나가던 1981년, 부림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사회현실에 눈뜬 이후 ‘노동자의 벗’이 되고 ‘거리의 변호사’ ‘아스팔트 위의 전사’가 되었다.

1988년 제13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그해 11월 ‘청문회 스타’로 떴으나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고 김영삼과 결별함으로써 가시밭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그의 헌신적 노력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승리했으나 2000년 총선에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낙선했다. 거듭된 ‘아름다운 실패‘는 민중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펴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를 탄생시켰다.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에 뛰어들어 '이인제 대세론'을 뒤엎는 파란을 일으킨 그는 내친 김에 본선에서 ‘이회창 대세론’까지 뒤엎으며 첫 ‘시민’ 대통령이 되었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모든 국가권력을 헌법정신에 맞춰 제자리에 돌려놓고자 했던 그는, 기득세력의 완강한 저항 가운데서도 혁신과 소신의 정치를 펼쳤고,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10·4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는 국민을 벗으로 대했고, 국민이 벗으로 대할 수 있었던 첫 대통령이었지만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으로 비판을 받는 등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 채 2008년 2월 퇴임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진보주의를 연구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수구기득세력의 집요하고 교활한 ‘마녀사냥’에 포위된 그는 ‘사람사는 세상’ 꿈을 남긴 채 2009년 5월 23일 이 세상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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