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광란에 몸을 맡기리라,
인류의 고통과 행복을 이 가슴에 쌓으리라,
궁극에는 그들처럼 나 또한 파멸하리라.
<파우스트> 번역서의 결정판,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파우스트 1, 2> 출간
19세기 원전의 리듬과 운율을 21세기의 우리말로 완벽하게 재현해 낸
<파우스트> 번역의 완결판!
고어식 번역의 한계를 깨고 번역의 오류를 다잡아 현대 우리말로 재탄생하다.
1. <파우스트>가 비로소 확실한 토대를 갖게 되었다고 평가받은 알브레히트 쇠네의 획기적인 <판본> 선택
2. 독문학자이자 시인인 번역가의 완벽한 텍스트 이해와 우리말 실력으로 원전의 시적 문체를 성공적으로 재현, 그동안의 번역 오류 교정
3. 괴테에게 갖는 <파우스트>의 의미, 독일 고전주의 정전으로서의 <파우스트>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주는 <작품해설>
4. 18쪽에 달하는, 파우스트의 생애와 작품의 기록을 상세하게 다룬 <작가 연보>
5. 작품의 내적 분석으로 작품 이해를 돕는, 400여 개에 달하는 풍성한 주석
왜 <파우스트> 번역의 결정판인가?
독문학자이자 시인, 세계릴케학회 정회원으로서 왕성한 번역 활동을 하는 고려대학교 독문학과 김재혁 교수가 오 년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낸 연구 성과가 바로 펭귄클래식 판 <파우스트 1,2>이다. 김 교수는 ‘낯선 언어를 통한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바로 번역’이라는 생각으로, 문학 작품의 번역도 하나의 예술 행위이며, 번역 문학도 하나의 작품 행위로서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미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차원에서 종래의 번역본들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작품의 번역에 착수했다. 언어와 문화가 갖는 상이성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바탕으로 원작에서 구사한 효과가 번역 작품에서도 독자에게 전해지도록 하는 것을 중심 목표로 삼고, 이 책이 궁극적으로는 동시대인들에 대한 봉사가 되도록 했다.
<파우스트> 번역에서 중점을 둔 것은, 첫째, 작품 전체의 형식적 틀로서의 드라마를 드라마답게 하는 것, 둘째, 괴테의 입김을 생생하게 시인의 입김으로 되살리는 일이었다. 작품 내 여러 요소들이 하나의 심포니처럼 큰 강물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 전체를 보는 눈과 세세한 사항을 놓치지 않는 세밀한 눈까지 구비하였다. 드라마이자 운문인 <파우스트>의 행과 행 사이의 시적 긴장에 대한 주의 깊은 성찰로, 원문의 긴장감이 한 행마다 한 단위로서 살아남게 하였고, 드라마 전체의 극적인 긴장감은 물론 주인공들의 대화 하나하나의 긴장감 또한 살려냈다. 뿐만 아니라 괴테가 작품을 쓰며 운을 맞추고 리듬을 맞추기 위해 썼던 고민에 값하는 노력을 우리말로 리듬을 살리고 언어를 정갈하게 만드는 데 쏟았다. 독일어로 운과 리듬의 수를 세면서 괴테가 글을 썼다면 이 효과가 비슷한 정도로 우리말로 재생하려고 노력했다.
펭귄클래식 판 <파우스트>의 원전은 1994년 출간되어 독일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는 알브레히트 쇠네의 획기적인 판본을 통해 확실한 토대를 갖게 되었다.”는 칭송과 함께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알브레히트 쇠네(Albrecht Schone)의 판본이다. 알브레히트 쇠네는 판본을 문헌학적으로 바로잡고 이를 1140쪽이 넘는 주해서로 증거하고 보충하고 있다.
<파우스트> 생성의 역사와 의미, 문학사적 의의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옮긴이의 <작품해설>은 물론 괴테의 생애와 작업 기록을 18쪽에 달하도록 상세하게 다룬 <작가 연보>, 한국 독자를 위해 원문의 어려움을 쉽게 설명하며 작품의 내적 분석을 하는 400개가 넘는 풍성한 <주석> 또한 펭귄클래식 판 <파우스트>가 갖는 독보적 가치이다.
괴테에게 <파우스트>는 무엇이었나?
괴테가 <파우스트>를 처음 접한 것은 어린 시절 인형극장을 통해 「파우스투스 박사」를 본 것이었다. 그리고 작품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죽음을 몇 주 앞둔 상태였다. 작품 구상에서부터 집필 완성에 이르는 생성의 역사가 바로 시인의 평생 수명과 맞먹는 70여 년이다. 이 기간 동안 괴테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한 세계관적, 철학적, 종교적 문제를 <파우스트>에 압축해서 풀어놓았으며 작가이자 시인으로서 쌓은 예술적 힘을 이 한 작품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작가 괴테의 삶과 문학이 총체적으로 투영된 저장고라 할 수 있다.
<파우스트> 1부는 「우어파우스트」(1775년), 「파우스트. 단편」(1788년 완성, 1790년 인쇄), 「파우스트. 비극. 제1부」(1808년), 총 세 번의 작업 기간을 거쳐 30여 년 만에 완성되었다. 이 세 가지 원고는 내용상의 확장도 가져왔지만 작가 자신의 문체에도 큰 변화를 보여준다. 괴테는 스물다섯 살이 되던 1775년에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을 찾아가 <파우스트>의 일부를 낭송한 적이 있는데, 그때 궁정에서 일을 보던 괴히하우젠이 텍스트를 필사하여 그것이 19세기 말에 발견된 바, 그것이 바로 「우어파우스트」가 되었다. 이렇게 작가의 낭송을 통해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므로 <파우스트>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배어 있다.
인형극, 신비극, 고대 비극, 디오니소스극, 마법 소극, 종교극, 가면극 등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어우러진 <파우스트> 2부는 지극히 진지한 것과 유쾌한 것, 끔찍한 것과 즐거운 것이 뒤섞여 시적 리듬과 운율을 통해 웅장한 하모니를 내는 커다란 교향악과 같다. 1부가 극적이고 세계의 충실한 재현에 있다면, <파우스트> 2부는 그런 조악한 것을 벗어난 순수 영혼의 세계를 추구한다. 1부에서 시작된 악마의 불길은 사랑의 불길 앞에 물러나고, 악마와의 계약은 사랑의 맹약으로 대체되며 악마는 악마로서의 본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이 2부의 큰 테마이다.
<파우스트> 2부의 집필 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수용이다. 즉, 파우스트와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괴테는 1800년 9월 23일자 실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로 그것이 제2부의 정신적 중심점이 될 것이며 그 “정점”으로부터 “전체 작품을 조망할 수 있을 거”라고 밝힌다. 여러 차례의 집필 중단과 개시의 반복 끝에 1832년 초, 드디어 작품이 완성된다.
<파우스트>는 왜 독일 고전주의 정전인가?
독일 라이프치히와 하르츠 지방,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1480년부터 1538년까지 연금술사, 마법사, 점성술사 그리고 예언가로 살았고 파우스트의 전설을 만들어낸 실존 인물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 그가 <파우스트>의 실존적 주인공이다. 철학은 물론 의학, 신학, 법학까지 모두 섭렵하였으나 인간 존재의 한계에 부딪힌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인간의 고귀한 영혼을 빼앗아 노예로 삼고자 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자신의 영혼을 걸고 계약을 맺는다. 그러곤 마녀의 몰약을 마시고 젊은 청년으로 회춘하여 처녀 그레트헨에게 반한다. 쾌락의 늪에 허우적거리게 만들고자 했던 메피스토의 계략과는 달리 파우스트가 진심으로 그레트헨을 사랑하게 되자, 메피스토는 그레트헨이 어머니를 죽이고 파우스트가 그녀의 친오빠를 살해하게 만든다. 2부는 그레트헨의 비극으로 쓰러진 파우스트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악마적 죄와 영혼의 갱생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파우스트>가 독일 고전주의의 정전이 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다루는 테마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완성을 위한 갈등을 다루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본성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욕구는 천사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두 진영에 의해 대변된다. 중요한 것은 삶에 지친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문제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계약 내용대로 세속적 즐거움과 그리스 세계의 초월적 쾌감까지 다 맛보았는데, 이것을 깨고 천사들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해 내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옳은 일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괴테도 1797년에서 1801년 사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여기에는 세계관적, 철학적 성찰이 개재된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싸움에서 최종 승자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파우스트가 오만하게 자신이 신이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신을 가슴에 품고서 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향해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런 파우스트의 노력 의지를 꺾으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노력 앞에 메피스토펠레스의 존재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드러난다.
메피스토펠레스
이제 어디 가서 하소연하나?
나의 정당한 권리를 누가 찾아주나?
나이깨나 먹어가지고 속아 넘어가다니,
당해도 싸다, 싸다고, 꼴 한번 좋다!
내가 실수를 해도 큰 실수를 한 거야,
온갖 공을 다 들여놓고 웬 개망신이야!
욕정에 눈이 어두워 천박하게 날뛰다
그 잘난 악마가 잘도 속아 넘어갔다.
노회하가로 유명한 이 악마가
이런 엉터리 철부지 짓을 저질렀으니
천하에 이런 바보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엔 내가 지고 만 거야.
(<파우스트 2권>, 378쪽)
괴테는 인간사가 이성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비이성과 우연, 자의성이 개입하며, 이런 것이 세상사를 규정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서로 반대되는 힘들의 존재가 하나의 전체로서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악마성도 결국 인간의 착한 측면을 도모하는 촉매제가 되며 노력하는 인간은 절대 구원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2부 제5막에서 “언제나 그침 없이 노력하는 자,/우리의 구원을 받으리라.”(2권, 383쪽)라고 노래한 천사들의 말은 인간 안에는 궁극적으로 신이 자리한다는 괴테의 믿음을 대변한다.
독일어로 파우스트는 ‘권투선수’나 ‘주먹이 센 자’라는 뜻으로 그만큼의 자긍심이 들어 있고, 라틴어로 파우스투스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파우스트는 중세의 마법사에서 근대의 한 개인으로서, 인격을 갖춘 남자, 그 독립성에 근거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 되어 자연과 마주 서고자 한다. 마법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주먹”에 의지하여 사는 한 개인으로서의 삶, 그것이 파우스트의 방황이 갖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