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역사

실연의 역사

  • 자 :박주영
  • 출판사 :문학동네
  • 출판년 :2013-10-26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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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에 베인 것처럼 따갑고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시린,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삶.

매일매일 헤어지면서도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역사.



여섯 가지의 사랑에 관한, 여섯 가지의 실연의 역사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연애담을 나누는 풍경은 늘 진지하고 자못 흥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대화들은 사사로운 웃음이나 눈물 사이에서 아픈 헤어짐으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설렘이나 기쁨의 표정들은 찰나에 스쳐지나가고,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고단함만 덩그러니 남을 때, 그제야 우리는 실연을 직시한다. 우리는 왜 사랑에 실패하는 것일까? 영원함이란 말이 상투적인 수식어로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부재(不在)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뒤늦은 사랑의 맨얼굴에, 우리는 부랴부랴 다친 마음을 수습한다. 실연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사랑의 본모습이 보인다. 이는 곧 삶에 관한 이야기에 다름아닐 것이다.

『백수생활백서』로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고,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종이달』 등의 장편소설을 펴내며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박주영의 첫번째 소설집의 제목이 ‘실연의 역사’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우리 시대 이삼십대 여성들의 삶과 사랑에 커다란 관심을 가져온 그는, 그간 써내려온 여섯 편의 단편소설에서 아픈 이별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이 천착한다. 이 책은 사랑의 여러 가지 존재방식에 관한 농밀하고 세련된 기록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존재하는 우리들의 ‘실연의 역사’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이제 나이가 열 살밖에 안 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질문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느냐고. 우리들은 스무 살이 되어서도, 아니 서른 살이 넘어서도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박주영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늘 사랑에 관해 끊임없이 묻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보기도 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노력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늘 헤어짐이다.



우리는 병에 걸렸다. 번번이 실패하면서 거듭해서 사랑에 빠지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면서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으며, 불가능하다고 이해하면서 여전히 기다린다. 우리는 실망할 뿐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갇혀서 눈물 흘리고 그리워하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_(88쪽)



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아파하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양윤의의 지적처럼,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가장 극적인 성장통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다가, 어느 사이 다시 부침을 겪고 결국엔 헤어지는 것. 박주영은 사랑의 관계가 사람 사이의 존재론적 국면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연(失戀)이라는 말이 연애의 실패를 뜻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이 단어를 단지 남녀 간의 이별로만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헤어짐의 연속을 ‘실연의 역사’라고 불러보자. 학창 시절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며 일어나는 친구들과의 헤어짐도, 좋아했던 강아지나 고양이와의 사별도, 매우 아껴 늘 사용하던 물건이 어느 날 갑자기 부서져 버려야 했던 기억도, 우리는 실연이라 불러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집의 가장 처음에 실린 「나는 아이팟이다」의 정아는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아이팟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서 만난 윤주 언니는 이런 정아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그들은 아이팟을 함께 사용하면서 친구가 되고,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결국 윤주 언니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정아에게 자신의 아이팟을 남긴다. 친언니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며 정아는 윤주 언니의 아이팟 이름이었던 ‘스텔라’로 불리기를 원한다.



나는 항상 아이팟을 가지고 다닌다. 음악은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_(9쪽)



「스파이의 탄생」의 남자는 어느 날 스무 살 이후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깨어나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 위해 한 여자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러는 도중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고백을 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여자가 스파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자도 잊었던 과거인 스파이로서의 생활로 돌아오게 된다. 자아찾기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묘한 이야기다.



나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십 년 전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우리’의 근황도 전했다. 인간이 기억의 총합이라면 그 기억을 가진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그 누군가. 하지만 그녀는 정답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십 년 전의 나만을 알고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일 테지만 그것은 그녀의 진실일 뿐이었다. _(53쪽)

「칼처럼 꽃처럼」의 여자는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여전히 아파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 배달되는 의문의 초대장. 초대장을 보낸 사람들은 그녀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겠다고 한다.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랑은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_(92쪽)



「소설 小說 小雪」은 첫눈이 내린다고 전해지는 절기인 소설에 출간된 소설을 쓴 소설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한 남자와 여자가 탄 비행기가 기상악화로 회항한다. 남자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여자는 그 소설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는 소설가를 죽이고 싶다고 고백한다. 남자는 장난삼아 완벽한 살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여자에게 말했고, 얼마 후 그 소설가는 죽은 체 발견된다. 남자는 형사에게 찾아가 그간의 일들을 전하다 소설가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 그 여자가 소설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은 단 한 줄이었다. “K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남자의 이름은 K로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가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_(118쪽)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현실과 조금 다른 미래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완전한 인간들’은 더이상의 성장이 필요 없는, 말 그대로 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런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영생에 가까운 존재임에도, 생활하는 데 불편한 어떠한 어려움도 없는 좋은 여건 속에서 살아도 그들은 여전히 불행하다. 그들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완전한 인간들은 결국 ‘소멸’을 선택한다.



누구의 삶도 아닌 나의 삶. 거지 같거나 짐승 같거나 벌레만도 못하거나, 고통스럽고 의문스럽고 치욕스러운 삶. 유리 조각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베이고,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시리고,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로운 시간. 시간이 아니라 삶. 백만 번 다시 태어나도 알 수 없는 세계를 궁금해했다. _(140쪽)



「메리골드」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은 유치한 짓이며, 결혼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가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토록 냉소적인 가영의 앞에 세호가 나타나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점점 빠져들게 된다. 사랑은 단순한 교환이 아닌 도둑질에 가까운 것. 그렇게 세호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가영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점점 가라앉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는 사라질지 모를 지상 위에서 가영은 밭은 숨을 쉬면서 사무치게 사랑을 그리워한다. 몸이 기억하고, 심장이 기억하는 그. 가라앉고 있다. 사라질 전망이다. _(188쪽)



이 헤어짐의 세계를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성장이고, 우리가 사랑의 대가로 떠안아야 할 몫이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주체만이 행복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여전히 겪을 수밖에 없는 실연의 아픔을 견뎌내고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한다. 박주영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실망할 뿐 절망하지 않는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만 절대 발을 헛디디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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