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이 창조한 세계,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다
탄생 201주년을 맞은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 니콜라이 고골
그의 문학세계의 정수 네 편을 담은 작품집 출간!
러시아 사실주의는 고골에게서 태어났다.
스물두 살에 단편소설 여덟 편을 담은 『디칸카 근교의 야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 1852년 마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소설 열한 편을 더 발표하고 거기에 희곡 『감찰관』 그리고 『죽은 혼』으로 러시아 최고의 작가이자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니콜라이 고골. 역사, 드라마,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치열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슈킨과 교류를 하고 문학의 거봉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그를 빼고서는 러시아 문학을 논하지 못할 만큼 러시아 문학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은 고골이 어느새 탄생 201주년을 맞게 되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는 이를 기념하여 그의 기념비적인 대표 작품 네 편을 한 권에 모아 고골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장 우습지만 가장 슬프고 가장 기괴하지만 가장 평범하고 가장 환상적이나 가장 사실적인 작품들을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코」, 나를 외면하는 내 코의 정체는?
8등관 코발료프는 어느 날 아침 코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코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러다 마차에서 내리는, 자신의 코가 확실한 남자를 발견한다. 자기보다 더 높은 관직의 관리로 보이는 그 사람에게 "당신은 나의 코"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귀하는…… 제 코란 말입니다."
그러나 코는 눈썹을 찌푸리며, "저는 저 자신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코가 없어진 데다 그 코가 살아서 인간 행세를 하는 황당한 경우라니……! 고골의 작품세계에서 코는 남성성과 관등을 상징한다. 코발료프가 코가 없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그것이 분명해진다.
"저는…… 소령입니다. 동의하시겠지만, 코 없이 다닌다는 것은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리에게 껍질 벗긴 오렌지를 파는 여자 노점상이라면 코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지사의 지위를 받을 만한 인물이……, 더구나 여러 부인을 잘 아는 사람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46쪽)
보잘것없는, 지위와 무관한 여자라면 코가 없어도 무방하지만, 내로라하는 관등의 소유자며 여러 부인들과의 교류를 해 나가야 하는 자신으로서는 코가 없이 지낼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코가 8등관 코발료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신체의 일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다. 고골은 바로 그런 코를 몸에서 떨어뜨려 객체화함으로써 코의 의미를 해학적으로 밝히고, 주인공의 관등과 남성성에 대한 과시욕을 한껏 비웃고 있다.
「외투」, 외투에 인생을 건 '작은 인간'의 이야기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서를 담당하는 9등관이다. 정서는 그에게 단순히 일 이상의 애정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정서를 하면서 다채롭고 즐거운 자신만의 세계에 접하여 만면에 화색을 띠곤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자모를 쓰는 순간이면,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버렸다. 웃음을 짓기도 하고, 눈을 찡긋거리기도 했으며, 마치 펜으로 써 내려가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는 듯이 입술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본문 79쪽)
그런 그가 한눈을 팔 일이 생겼으니, 러시아의 혹한으로 인해 닳아빠진 외투를 버리고 새로운 외투를 마련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먹지도 쓰지도 않고 모은 돈으로 어렵게 마련한 만큼 새 외투는 관청의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을 만큼 멋진 것이었다. 다름 아닌 아카키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귀한 새 외투를 밤길에 빼앗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절망감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아카키의 존재 이유가 되었던 일에 대한 사랑을 대신했던 외투는 소유의 욕구를 상징한다.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게 하고 급기야는 그것의 부재로 인해 목숨까지 잃은 주인공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 보임으로써 고골은 애잔한 인간성의 한 단면을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도스토옙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평한 「외투」는 사실주의 기법이 도드라진 고골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광인일기」, 상식과 정상에 대한 유쾌한 꽈배기
국장의 딸에게 반한 마흔둘 9등관 포프리신은 상사에게 구박을 당하고 심지어 국장 집 하인들에게조차 존중을 받지 못하자 더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과대망상에 빠진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군! ……나는 귀족이고 더 높게 진급할 수 있다. ……나는 대령이 될 테고, 운만 좋다면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도 있다고. (본문 124쪽)
포프리신은 급기야 자신을 스페인 왕이라 여기게 되고 정신병원에 옮겨진 것을 스페인에 와 있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기대했던 것처럼 존중과 고상함 대신 구타와 더 끔찍한 학대로 점철되어 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절규한다.
엄마, 불쌍한 자식을 구해 주세요! 이 아픈 머리에 눈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 주세요! ……고아처럼 불쌍한 자식을 꼭 안아주세요! 세상에 기댈 곳이 없어요! 사람들이 저를 고통스럽게 해요! (본문 147쪽)
「광인일기」의 문학적 독특함은 포프리신이 자신을 스페인 왕으로 여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있다. 포프리신은 개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귀족들이나 할 줄 아는 정확한 문법을 구사하여 쓴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그 편지 속 내용을 증거 삼아 고위 관료들의 작태를 비판한다. 이 작품은 귀족과 다름없는 개의 눈치와 판단력을 보여 줌으로써 그런 개에게 평가받는 인간 세상, 혹은 귀족 사회를 신랄하게 비웃는다. 상식을 뒤엎고 정상을 거꾸로 바라보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로꾸거’ 방식, 「광인일기」는 이 ‘로꾸거’ 잣대를 들이대 합격 판정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냉정하고 날카로운 통찰을 하고 있다.
「감찰관」, 부패와 허영과 아첨의 난장판
부패와 모순이 고여 있는, 흘러가지 않는 연못과 같은 조용한 시골 소도시. 잔잔한 그곳에 던져져 연못 전체를 뒤흔든 돌멩이가 있었으니, 그는 수도에서 온 감찰관(으로 오인된) 흘레스타코프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감찰관‘으로 오인된’ 데에 있다. 만약 감찰관이 아니라 국왕이 방문했다 할지라도 무서울 것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이었다면, 군수, 경찰청장, 병원장, 재판소장, 우체국장 등등의 고위직 사람들이 감찰관이라는 사람을 상상하고 그것을 겁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털지 않아도 먼지가 폴폴 날리는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만행이 드러날 때가 된 것이라 ‘스스로’ 인정하며, 묻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감찰관’을 찾아가 그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하게 된 것이다.
고골이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자신의 창작 경향을 전향하는 첫 번째 작품이라 여긴 「광인일기」는 나보코프가 가장 위대한 러시아 희곡이라고 칭한 문제작이다. 공연 후 크게 호평을 받은 이 희곡은 희곡작가로서 고골의 이름을 날리게 한 결정적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