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인간’이 담겨 있다
셰익스피어라는 위대한 작가를 만나는 기쁨
그의 비극은 지금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가
그의 대표적인 비극들을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유명한 4대 비극과, 4대 비극 못지않게 사랑을 받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시대를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 인간의 온갖 감정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가슴을 옥죄는 긴장감과 비극적 결말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그 어떤 문학작품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던 탓에 오히려 진지하게 손을 뻗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왜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도 든다. 그러나 영미권 문화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유래한 표현이 관용어로 굳어져 숱하게 쓰이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언어를 다루는 데 얼마나 능숙한 작가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창조해 낸 인물들과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으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번역문으로 읽으면서 그러한 표현들을 함께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신 우리는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이다. 이 책에서 모아놓은 그의 대표적인 비극들을 보며 우리는 그 놀랍도록 사실적인 인간들의 실체에 놀라고, 심지어는 경악할 수도 있다.
욕망, 분노, 시기, 사랑?인간의 온갖 감정을 파헤쳐 보여주는 작품세계
그의 비극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보고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극중 인물들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체에 너무도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덴마크에서 전해진 이야기 속 주인공인 ‘햄릿 왕자’에게 복수를 결단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성을 부여하여, 단순한 복수극의 주인공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인간상을 만들어냈다.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스코틀랜드 역사 속 인물 ‘맥베스’에게는 왕위를 빼앗는 대신 잠을 빼앗겨 고통스러워하는 악인의 모습을 덧씌웠다.
극에 상투적인 인물들만이 등장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인간성은 지금 시대에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만한 것들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16세기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인물이라 평가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고뇌하고, 욕망으로 꿈틀대는 인간이 등장한다. 인간이 가진 온갖 감정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셰익스피어의 극을 읽는 것은 인간의 실체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무대가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배경으로 하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은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비극관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햄릿》은 작가가 인생과 우주를 통찰하고 기교와 표현이 성숙했던 시기의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에서 현실의 비전을 절실하게 재현시켰으며,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강력히 우리의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오셀로》는 4대 비극 중에서 유일한 가정비극으로, 음모를 주제로 한다. 낭만적인 이상으로 가득 찬 오셀로 장군과 데스데모나의 사랑이 간악한 음모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야고 같은 악마와 인간 오셀로와의 대결에서 인간의 패배는 숙명적인 것이다.
《리어 왕》은 아득한 원시 시대의 몽롱한 배경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망은의 비극이다. 이는 극장에서도 도저히 효과적으로 상연해낼 수 없다고 할 만큼 그 규모가 우주적이며 거대하다. 진실을 보지 못했던 늙은 왕 리어는 폭풍우 속에서 울부짖는 고난 후에야 눈이 뜨이고 실체를 깨닫는다.
《맥베스》는 마녀들의 유혹에 동요되어 악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파멸로 치달아가는 반역자 맥베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찬탈한 왕관에는 평화와 만족이 아니라 공포와 번뇌와 무의미가 따라왔고, 그는 잠을 잃어버린 동시에 끊임없는 환상에 시달린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한 단면을 깊이 통찰하여, 마치 지옥도를 우리 눈앞에 전개시키듯 연극적으로 탁월하게 처리하여 보여주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4대 비극과는 달리, 운명에 의해 비극으로 치닫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운명비극이다. 두 남녀의 비극은 누구의 악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연에 의해 전개된다. 이 극의 등장인물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모두 선인들이다. 이러한 선인들에 의해 빚어지는 비극이니만큼 비극의 순수성은 더욱 커지고, 여기에 서정적이고 시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해 그 어떤 작품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 작품이다.
사느냐, 죽느냐?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가? _햄릿
지옥의 악마들아, 나를 채찍질해서 이 천사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다오. 열풍 속으로 내 몸뚱이를 흩날려다오! _오셀로
여기 누가 나를 알아보는 자가 없나? 이것은 리어가 아냐. 리어가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말을 하나? 리어의 눈은 어디 있어? 머리가 둔해지고, 분별력이 줄고 있나? 하! 깨어 있나? 깨어 있지 않나? 내가 누군지, 누가 좀 말해줄 수 없나? _리어 왕
넵튠의 대양의 물을 다 가지면 내 손의 이 피가 씻어질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 손이 망망대해를 붉게 물들여, 푸른 바다를 핏빛으로 만들고 말리라. _맥베스
아, 절름발이 같은 유모! 사랑의 심부름꾼은 역시 사랑의 화살이 해야 틀림없는 것을. 사람의 마음은 어두운 산 저편으로 그림자를 몰아내고 달리는 햇빛보다 열 배나 빠르잖아. 그렇기에 날개가 가벼운 비둘기가 수레를 끌고, 큐피드에겐 바람처럼 빠른 날개가 있는 거야. _로미오와 줄리엣